개발은 시작도 안 했는데, 사람부터 설득하고 있습니다
— 마케팅 어드민에 AI 검수 기능을 붙이기까지의 기록
🤖 시작은 단순했다: "마케터가 편하게 쓰게 만들자"
나는 평소에 AI를 좋아하는 프론트엔드 개발자다.
회사 내 마케팅 어드민을 보다 보니 이런 문제들이 눈에 띄었다.
- 오탈자, 이상한 띄어쓰기
- "기분 좋은 느낌의 사진" 같은 추상적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 디자인 가이드와 맞지 않는 이미지 업로드
이런 문제는 사소해 보여도, 누적되면 결국 ‘서비스 품질 저하’로 이어진다.
그래서 아주 간단한 목표를 세웠다.
AI 기능을 작게 붙여서 빠르게 상용화하고, 마케터가 편하게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하자.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AI 프롬프트 몇 줄로 텍스트 검수는 쉽게 해결됐고,
이미지 OCR 기능을 활용하면 대체 텍스트도 자동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때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이 정도면 금방 되겠는데?”
🧱 첫 번째 벽: 금융권 규제의 위엄
“운영망에서 AI를 돌린다고요? 혁신금융서비스 신청하셔야 합니다.”
회사가 금융업이다 보니, 운영 환경에서 AI를 쓰기 위해서는
금융위원회에 문서 제출 + 절차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건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보안·인프라·리스크·윤리 등 전방위 검토를 위한
최소 20장 분량의 문서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문서를 작성하는 데만 2주가 걸렸다.
시작도 안 했는데, 프로젝트 일정의 2주가 날아간 셈이다.
“일단 코딩부터 해볼까?”가 불가능한 상황.
회사에서 AI를 도입한다는 건, 특히 금융회사에서는 단순히 API를 붙이는 문제가 아니다.
👥 두 번째 벽: 전사 TF의 레이더에 포착되다
프로젝트 초반, 조용히 마케팅 어드민 내부에서만 작은 AI 기능을 붙이려던 내 계획에
갑자기 AI TF라는 전사 조직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팀은 전사 차원에서 AI를 어떻게 도입할지 고민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조직이다.
쉽게 말해, 사내 AI 프로젝트들을 살펴보고 “이거 확장 가능한가?”를 판단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내게 말했다.
“이거 전사적으로 확장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말은 좋지만, 그 순간부터 내 머릿속에 스코프 폭탄이 터졌다.
전사 확장 = 모든 부서와 협업해야 한다는 뜻이다.
송금, 결제, 고객센터, 자산관리 등등
부서마다 프로세스도 다르고, 말투도 다르고, 기준도 다르다.
게다가 마케팅 어드민은
“속도와 크리에이티브”가 중요한 콘텐츠 중심 서비스인 반면,
전사 서비스는
“일관성과 신뢰성”이 더 중요한 기능 중심 시스템이다.
같은 ‘AI 검수’라도, 풀어야 할 문제 자체가 아예 다르다.
그래서 나는 이 기능이 전사 확장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걸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그걸 설득하기 위해
AI TF, 기술 전략실과 총 5번의 미팅을 몇 주에 걸쳐 진행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 마케팅 어드민은 고유한 작성 흐름과 문체가 있다
- 해당 기능은 이 도메인에 특화되어야만 정확하게 작동한다
- 전사 확대보다, 작은 단위에서 정확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다
결국, TF와 전략실도 우리가 독립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해주었다.
🤹 세 번째 벽: 역할 밖에서 설득하기
나는 프론트엔드 개발자다.
기획자도 아니고, 서버도 아니고,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도 아니다.
기획도, 서버도, 조직 조율도 내 업무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기능을 만들고 싶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역할의 경계를 넘게 됐다.
1. PM 설득하기: "제가 하면 안될까요?"
이 어드민에는 이미 담당 기획자가 있다.
내가 “이 기능은 제가 직접 기획까지 해보면 어떨까요?”라고 말하는 건 민감할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접근했다.
“AI 프롬프트 구조를 이해하지 않으면 기획이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제가 구조 설계부터 테스트까지 주도하면,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진행할 수 있어요.”
다행히 PM은 열린 마인드를 갖고 계셨고,
결국 나는 이 기능을 기획과 개발을 모두 주도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2. UX 라이터팀 & 디자인팀 설득: "데이터 좀 주세요 🙏"
AI 검수 기능이 잘 작동하려면
내부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문구와 스타일, 디자인 가이드가 필요했다.
그래서 UX 라이팅팀, 마케팅 디자인팀에 연락을 드렸다.
다행히 모두 AI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었고, 프로젝트 자체에 흥미를 가져주셨다.
그러면서도 현실적인 질문이 나왔다.
“AI가 이상한 결과를 내면, 어떻게 대응하실 건가요?”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100% 정답을 기대하진 않아요.
룰 기반 로직과 테스트셋 검증을 병행할 거고,
사람이 확인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할 겁니다.”
이런 투명한 접근이 오히려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됐다.
이후엔 필요한 데이터나 가이드도 수월하게 받을 수 있었다.
🤝 네 번째 벽: 믿음직한 서버 개발자 구하기
기능을 완성하려면 서버 게이트웨이 연동과 백엔드 작업이 필요했다.
내가 직접 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3배는 더 걸릴 게 뻔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 전략에 공감하면서, 자기 일도 아닌데 열정적으로 도와줄 사람… 누구일까?”
해커톤에서 같이 일해보고 신뢰가 생긴 서버 개발자가 떠올랐다.
그는 곱슬머리에 무뚝뚝하게 생겼지만, 마음속은 소녀감성을 품은 MBTI F.
감정에 잘 반응하고, 진심에 약하다.
그래서 이렇게 설득했다.
- “이 프로젝트에서 당신이 왜 꼭 필요한지”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 “나는 당신을 진심으로 믿고 함께 하고 싶다”는 진심을 전달하고
- 간식도 살짝 얹었다 (진심은 디테일에서 완성된다)
결과는 성공.
진짜 든든한 동료가 생겼다.
🧊 다섯 번째 벽: 감정의 거리 좁히기
AI TF에는 과거 우리 팀과 다소 감정이 좋지 않았던 분이 있었다.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지만, 협업 경험이 썩 좋지 않았던 기억이 남아 있었던 듯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에서 그분과의 협업이 불가피했다.
그래서 피하지 않고, 대화를 청했다.
- 과거에 어떤 오해가 있었는지
-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는지
- 이 기능을 왜, 어떻게 만들고 싶은지를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분은 점점 우리 팀의 조용한 지지자가 되어주셨다.
심지어 내부 회의에서는
전사 확장을 막고, 우리가 이 기능을 독립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방어해주는 역할까지 맡아주셨다.
“AI보다 어려운 건, 사람 사이의 감정을 리팩토링하는 일이었다.”
🙋 그래서 내가 배운 것
이 프로젝트에서 만든 건 AI 프롬프트 몇 줄이 아니다.
진짜로 만들었던 건 신뢰, 공감, 설득, 관계였다.
- 기술보다 먼저, “왜 이걸 해야 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 기능보다 먼저, “누구에게 어떤 가치를 줄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 개발보다 먼저, 사람과의 신뢰가 있어야 일이 시작된다
- 그리고 무엇보다,
평소에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쌓아두면, 하고 싶은 일을 펼치기 훨씬 수월하다
💡 마무리하며: 결국, 사람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신입 때는 기술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다. “기능만 잘 만들면 되잖아?”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확실히 느꼈다.
정작 일을 움직이는 건, 기술보다 사람이더라.
AI 프롬프트 몇 줄이면 충분할 줄 알았던 기능 하나.
그걸 만들기 위해 이렇게 많은 설득과 조율이 필요할 줄은 나도 몰랐다.
아직 개발은 시작 단계지만, 진짜 어려운 일은 그 전에 이미 끝났는지도 모른다.
P.S.
이제 진짜로 코드 짜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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